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9.11 테러 (문단 편집) == 배경 == 1979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발발 후 이슬람권 각지에서는 '불신자 공산군'과 싸우는 아프간 무슬림들을 돕기 위한 [[지하드]]의 일환으로 궐기한 [[무자헤딘]] 전사들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은 내륙국이기에 인접국이자 파슈툰인이 많은 파키스탄을 거쳤다.]으로 몰려들었다. [[냉전]]으로 [[소련]]과 대립하던 [[미국]] 정부는 [[CIA]]를 통해 그들을 지원하였고, 서방 유학을 통해 영어에 능통했던 [[오사마 빈 라덴]]이 그 지도자가 되었다. 그러던 1988년 소련이 전쟁에서 손을 떼고 철수를 개시하자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하였다. 소련에 대항한다는 방향성을 잃고 지하디스트 세력을 유지하고자 했던 빈 라덴은 [[지하드]]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였고, 그 대상은 바로 기존의 동맹이던 미국이었다. 같은해 빈 라덴은 (후일 그를 계승하는) 아이만 알자와히리 등의 무자헤딘 베테랑들과 함께 [[페샤와르]]에서 '지하드의 선봉'이 될 조직으로 (아랍어로 '근본'이란 뜻인) [[알카에다]]를 창설하였다. 1990년 [[사담 후세인]]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걸프 전쟁]]이 발발하자 빈 라덴은 무자헤딘 조직의 활용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에 군사 지원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사우디 왕가는 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대신 미국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후 미군이 사우디에 주둔하게 되자 빈 라덴은 [[사우드 왕조|사우디 왕가]]에 대해 타크피르(배교자)라며 [[지하드]]를 선포하였다. 또한 '[[아라비아 반도]]의 비무슬림을 추방할 것[* 정확히는 무함마드가 살아 있는 한 기독교도와 유대인을 아라비아 반도에서 축출할 것]'이라는 [[하디스]]를 인용하며 1996년 사우디에 주둔하는 미군에 대한 퇴거를 명령하는 파트와를 내렸다.[* 다만 [[타이마]] 문서에서 볼 수 있듯 무함마드 사후 5백여년이 지난 12세기 후반까지 아라비아 반도 내륙([[네지드]])의 오아시스 도시들에는 여전히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알카에다 창설 전부터 [[이스라엘]]과 아랍의 세속주의 독재 정권들을 지원하는 미국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던 빈 라덴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민간인과 군인을 가리지 않고 전세계의 미국인들에 대한 테러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1998년 알카에다는 [[케냐 미 대사관 폭탄 테러]]와 탄자니아 미 대사관 테러[* 역설적이게도 탄자니아 미 대사관이 있던 [[다르에스살람]]은 아랍어로 '평화의 집'이란 뜻이다.]를 감행하면서 전세계 [[이슬람 극단주의]]에 있어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하였다. 같은 해 빈 라덴은 미국의 대이스라엘 정책과 중동 개입을 성토하며 전세계 무슬림들이 단결하여 '이슬람 국가들의 [[공공의 적]]인' 미국을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중동은 물론, 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 등 이슬람권 각지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그의 산하에 모여들었다. 충분한 세력을 확보한 빈 라덴은 1998년 말부터 미국 본토에 대한 테러를 감행할 조직을 구성하기 시작하였다. 그 구성원 중에는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의 주동자였던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도 있었다. 이후의 인터뷰에서 빈 라덴은 1982년 [[레바논 내전]] 당시 이스라엘 공군이 미제 무기로 [[베이루트]] 도심의 고층 건물들을 사정없이 폭격하는 것을 목도하고는 보복 심리로 미국의 마천루들에 대한 공격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빈 라덴의 이러한 심리와 실제로 그러한 공격을 감행했던 칼리드의 합류는 9·11 테러 계획의 구체화로 이어졌다. >미국 군사력의 기반인 (미국의) [[경제]]에 타격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 경제가 타격을 입으면 그들은 재건을 해야만 할 것이다. >ㅡ 2004년 파키스탄에서 습득된 빈 라덴의 녹취록[* 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9·11의 책임을 부인하던 빈 라덴의 9·11 주도가 더 확실해지는 증거가 되었다.] 알카에다의 최종 목표가 된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에 있어 빈 라덴은 미국 군사력의 기반은 미국의 경제력에 있고, 따라서 미국 경제의 상징과도 같은 [[세계무역센터]]를 테러의 주요 목표로 선정하였다. 또한 9월 11일을 실행일로 정한 것은 그가 누차 서방의 중동 개입의 시작으로 간주한 [[제2차 빈 공방전]]이 절정에 달했던[* 정확히는 기병대 [[윙드 후사르]]를 앞세운 폴란드군이 막 빈의 성벽을 돌파한 [[오스만 제국]]의 후위를 습격하여 승리를 이끌어낸 날] 날이였고, 또한 [[유엔 총회]]개막일이자. 빈라덴 자신의 [[궐석재판]]하루 전날이기도 했다. 이러한 여러가지 요인들이 겹쳤기 때문에 9월 11일로 계획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테러를 실행한 시간도 이른 아침 시간대라 관광객들이 아닌 출근하는 미국 시민들을 노린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1999년 빈 라덴의 참모 모하메드 아테프는 테러의 실행 방법으로 비행기 납치를 결정하고 이를 실행에 옮길 인원을 모집하였다. 선발 결과 교육 수준이 높고 서방 유학 또는 거주 경험이 있어 영어가 능숙한 이들로 약 20여명의 납치조가 꾸려졌다. 당시 [[탈레반]]의 초청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본거지로 삼고 있던 알카에다는 이들을 초청하여 훈련시켰다.[* 훈련 내용 중에는 서구 의상을 입는 법, 음식점에서 주문하는 법과 같은 것 등도 있었다고 한다.] 납치조는 2000년 봄부터 차례대로 미국에 입국하였고, 빈 라덴은 사우디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친척을 포섭하여 그들의 여권을 발급하였다. 2000년에 입국한 1차 납치조는 [[플로리다]]의 허프만 비행장 등지에서 조종 훈련을 받았고, 2001년 봄에는 2차 납치조가 합류하였다. 2001년 7월, 납치조의 조장 격인 [[모하메드 아타]]는 스페인에서 알카에다 간부와 접선하여 최종 계획을 브리핑하였다. 빈 라덴은 이를 승인하고 최대한 빠른 실행을 지시하였다. 그러나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사실 미국 정보 당국도 어느 정도는 알카에다의 음모를 눈치채고 있었다. 이미 2000년 전후로 사우디 정보 당국의 협조로 CIA는 알카에다 조직원들이 미국 비자를 소지하고 있음을 확인하였고, 세계 각지의 요원들에게 경고하였다. 2000년 7월, CIA는 알카에다 조직원 2인 이상이 미국에 입국한 것을 확인하였고 [[FBI]]는 미국 내 비행학교에서 이상한 조짐을 감지하였다. 하지만 두 정보 당국 간의 협조는 거의 없었고, 당연히 이들의 연관성을 찾지 못하고 그저 테러리스트들의 '''개별''' 행동으로 치부하였다. 심지어 알카에다 조직원에 대한 FBI의 정보 공개 요청을 CIA가 거절하는 일도 있었다. 이는 1995년 미국 법무부가 극비 사항을 정보 당국 간에 공유하는 것에 대한 규제를 내린 것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미국은 2000년 [[USS 콜 테러사건]] 이후에도 알카에다가 단순히 해외 주둔 미군에 대한 공격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여겨 해외 미국인들에 대한 경계 강화에만 치중하였다. 2001년 8월, 요르단 정보 당국은 미국 측에 알카에다가 미국 내에서 비행기와 연관된 음모를 진행 중이고, 이는 한 달 내에 집행될 것이라는 중요한 첩보를 전달하였다.[* 심지어 요르단 정보 당국은 알카에다 측의 작전 암호(큰 결혼식)까지 전달하였다.] 그 후 비로소 민간 비행 학교에 알카에다 조직원이 있다는 FBI의 의혹 제기를 받아들인 CIA는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국내에서 [[하이재킹|비행기 납치]] 등의 형태로 공격이 예상된다'고 보고하였다. 8월 16일에는 알카에다 조직원 자카리아스 무사위가 [[미네소타]]의 비행 학교에서 [[보잉 747]]기의 조종 훈련을 고집하다가 의심을 받아 체포되었다. 하지만 FBI는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고, 조지 부시 대통령을 위시로 한 미국 수뇌부 역시 알카에다를 과소평가하며 해봤자 납치 후 [[인질극]] 정도 벌일 뿐 감히 미국 본토를 향한 직접 공격을 감행할 것이라는 여기지 않았다. 그렇게 빈 라덴이 설정한 [[D-Day|테러 개시의 날]]은 묵묵히 다가오고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